“우리는 인구절벽이라는 구조적인 만성병에 걸렸다.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한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은 섬뜩했다. 먼 미래 얘기로 치부했던 인구절벽이 어느덧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다고 경고했다.


근거도 명확하다. 경기침체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을 인구절벽이란 수식어와 대조하니 거짓말처럼 맞아떨어진다. 증세 논란, 미분양아파트(빈집) 증가, 자영업자의 폐업, 모병제 등이 대표적 예다.

◆자영업자 직격탄… 대비책은 ‘미흡’

인구절벽은 소비가능인구를 줄게 하고 국부창출 능력을 떨어뜨린다. 경제활동인구가 줄면 그만큼 세금을 내는 인구도 감소한다. 집을 매매하려는 수요층이 점차 사라지면서 빈집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분양아파트를 비롯해 일반상가의 공실률이 점차 느는 추세다.


심각한 것은 자영업자의 폐업 증가다. 대기업은 수출 등으로 그나마 소비절벽에 따른 부작용이 덜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직격탄을 맞는다. 소비인구가 줄면 식당과 미용실, 가계 등의 매출이 동반 하락해 폐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진=임한별 기자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진=임한별 기자

취업시장도 꽁꽁 얼어붙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취업시장의 27%에 달한다. 자영업자가 몰락의 길로 들어서면 이들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게 돼 가계부채가 늘고 취업률도 떨어뜨리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김 교수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2006년부터 준비해야 할 중요한 정책과제였는데 지금까지도 마땅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국민 역시 위기의식조차 없을 만큼 인구절벽 리스크에 둔감하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를 만성병으로 비유했다. “골절이나 맹장 등 급성병에 걸리면 우리는 곧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병은 통증이 서서히 오기 때문에 제때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절벽도 마찬가지다.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가 위기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민정책 장려… 사회인식 개선 시급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해법을 묻자 김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인구절벽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청년에게 결혼하라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해서 단기간에 뚝딱 인구가 늘어나는 사안도 아니다. 장기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 시스템 구조상 이를 단번에 바꾸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다만 더 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야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해법이 이민정책이라는 것. 하지만 다문화를 배척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이 역시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안다면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환영해야 한다. 이민정책은 우리 경제를 살리고 인구절벽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다. 대표적으로 19대 국회의원 이자스민 의원(새누리당·비례대표)의 경우 4년 내내 인종차별적인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다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이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전환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는 준비가 덜돼 있다.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민정책이 리스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때론 프랑스 파리처럼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도 이런 위험 때문에 이민정책을 배척했다가 지금까지 인구절벽으로 인한 저성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만 우리에겐 다른 나라와 다른 장점이 있다. 조선족과 탈북자가 그 해답이다.

“조선족은 우리와 말이 통하고 문화도 대체로 비슷하다. 한민족과 다름없는 탈북자 역시 우리가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통제 가능한 민족이기에 이들 인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회질서가 무너지거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시선으로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울러 이들이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정부정책도 필요하다.”

인구절벽으로 나타난 가장 심각한 일은 소비가능 인구의 축소다. 이 역시 김 교수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다.

“소비가능인구를 늘리는 방안은 3가지다. 우선 주부 등 집에 있는 여성을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 여성의 소비수준이 남성보다 높은 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한다면 내수를 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은퇴한 노인을 근로시장에 끌어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비가능인구를 일시적으로 수입하는 것이다. 관광이 그 예다. 일본이 관광인구 4000만명을 정책목표로 세운 것도 소비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다.”

물론 최종목적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보육체계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미흡하다. 대가족을 이뤘던 과거엔 조부모가 아이를 대신 길렀으나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또 사교육비와 대학입시, 취업까지 부모가 아이 때문에 짊어지는 짐이 만만찮다. 김 교수는 국가가 보육에서 취업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김현철 교수는 누구?

우리나라의 대표적 주류 경제학자인 김현철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본 명문대인 게이오비즈니스스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나고야 상과대학 조교수와 츠쿠대 부교수, 서울대 일본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귀국 후 2002년부터 삼성물산, 애경그룹, 아모레퍼시픽, 현대백화점, LG생활건강 등 주요 대기업의 자문을 맡았으며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수년 전부터 인구절벽과 고령화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쓴소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